전라북도 임실 신덕면을 지나는 55번 지방도로를 가다 두 봉우리에 자연스레 눈길이 간다. 내 시선을 끈 것은 상사봉想思峰(402.1m)과 노적봉(405.3m)이다. 두 봉우리는 작은 하천인 옥녀동천을 사이에 두고 연인처럼 다정하게 서로 마주 보고 있다. 마치 진안 마이산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처럼 말이다.분지에 우뚝 솟은 두 봉우리는 동양화에서나 봤을 법한 수직 암봉으로, 높이는 낮지만 위압적이고 강렬하다. 두 곳 모두 ‘여기에 정말 올라가는 길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가파르다. 오르기 만만치 않을 것으로 생각되는 모양새다.전설에 의
중국 전설에는 신선들이 살고, 불로불사의 약이 있다는 삼신산三神山이 있다. 이것들은 봉래산蓬萊山, 방장산方丈山, 영주산瀛洲山으로 불린다. 예로부터 이 산들은 중국 동쪽 바다 건너편에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 한반도 또는 일본에 삼신산이 존재한다는 전설 또한 있었다.한국에서는 중국의 삼신산을 본떠 금강산을 봉래산, 지리산을 방장산, 한라산을 영주산으로 부르기도 했다. 호남 지역에서는 지리산, 무등산과 더불어 방장산을 호남의 삼신산으로 추앙했고, 전라북도는 정읍 두승산, 부안 변산과 더불어 방장산을 전북의 삼신산으로 정했다.방장산方丈山(
전국에는 계족산鷄足山이 여러 곳 있다. 순천·광양 계족산(729.4m)을 비롯해 대전 계족산(423.8m), 구례 계족산(702.8m), 영월 계족산(889.6m) 총 4곳이다. 계족산의 이름 유래에는 여러 설이 있다. 하나는 산의 모양이 닭다리를 닮았다는 것인데, 그 때문에 계족산은 닭발산, 혹은 닭다리산이라고 불린다. 또 다른 설은 지네가 많은 지역에 지네의 천적인 닭의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다. 지네는 땅이 축축하고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는데, 실제로 4곳의 계족산은 지네가 생육하기 좋은 큰 강이나 큰 계곡을 끼고 있
한반도 서남단 남도의 끝자락에 있는 진도珍島는 멋과 맛과 흥의 고장이다. 과거 대표적인 유배지였던 만큼 유배인들의 문화가 녹아 시, 서, 노래가 꽃 피운 예술의 용광로가 되었다. 진도아리랑에서 알 수 있듯이 진도의 문화는 고단한 삶과 한恨을 예술적 경지로 높였다. 망자를 위한 씻김굿과 상갓집 귀신도 웃게 만드는 ‘다시래기’는 초상집에서도 해학과 풍자가 넘치게 한다. 여럿이 하나가 되어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 오랜 세월을 통해 체득한 지혜, 그것이 진도 사람의 기질이다.진도는 우리나라에서 제주도·거제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해안선
조선을 건국했던 태조 이성계는 전주 이씨 시조 이한의 21세손이다. 그 덕분인지 조선건국과 관련한 문화자원은 67곳 중 51곳이 전라북도에 모여 있다. 이성계는 전북 임실 성수산 상이암에서 하늘의 소리를 들었다 하고, 진안 마이산에서는 개국의 상징인 금척金尺을 받았다고 한다. 전라북도 남원시에 위치한 만행산萬行山(909.6m)에도 이성계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과거 그는 만행사에서 고승의 설법을 듣고 감동했는데, 훗날 왕이 된 후 이곳에 들러 3일간 머무르면서 정사를 살피고 돌아갔다고 전해진다. 현재 만행사는 정사를 살피고 돌아갔다는
고흥 두방산斗傍山(486.4m)은 점입가경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산이다. 벌교와 고흥반도 경계에 있는 두방산은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양파 같은 매력이 있다. 일단 산에 발을 들여놓으면 숨은 매력이 하나씩 드러난다.낮은 높이에 비해 조망이 탁월하다. 순천만을 비롯해 여자만과 득량만, 고흥반도 황금들판이 한눈에 조망된다. 굵직한 암릉 산세이지만 부드러운 능선을 가지고 있다. 귀절암이 있다 하여 귀절산, 말의 명당이 있다 하여 말봉산이라고 불렸고, 고문헌에는 지리산, 지래산 등 다양한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크고 작은 골짜기
전북 장수군과 경남 함양군의 도계를 나누는 할미봉(1,026m)은 육십령에서 북쪽 남덕유산을 바라보고 있다. 할미봉은 삼국시대에 백제와 신라의 국경선으로 치열한 격전지였다. 할미봉이라는 지명은 과거 정상 부근 명덕산성에 군사들이 먹을 양식을 쌓아 놓았다 해서 합미성合米城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백두대간 종주꾼들은 할미봉을 남덕유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봉우리 정도로 생각하지만, 최근에는 할미봉 주변의 암봉을 보기 위해 오롯이 이곳을 목적으로 찾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할미봉의 들머리인 육십령휴게소는 해발 730m의 고지대. 할미봉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 주지는 않으렵니다”안도현 시인은 ‘화암사. 내사랑’ 이란 시에서 불명산의 화암사에 대해 ‘잘 늙은 절 한 채’라고 말했다. 그는 화암사를 나 혼자만 알고 싶고, 알려지면 순백함을 잃을까 묻어두고 싶다고도 했다.전라북도 완주에 위치한 불명산(480m)은 금강정맥에 있다. 하지만 금강정맥을 알려주는 지도에서 불명산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근처의 운장산, 마이산, 천등산, 대둔산 등 워낙 이름난 산들에 비해 불명산은 산세가 뛰어나거나 볼거리가 많은 편이 아니어서 그럴 것이다. 그런 불명산에도 진흙 속 연꽃
우리나라에서 ‘백운白雲’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산은 50여 곳이 넘는다. 그 많은 백운산 중, 광양에 위치한 백운산(1,222m)은 높이와 규모에서 제일 맏형이라고 할 수 있다. 백운산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호남정맥을 완성하고 섬진강 오백리 물길을 갈무리한다. 흔히 정맥은 힘차게 꿈틀거리다가도 바다나 강을 만나면 그 맥이 사그라지기 마련이지만, 백운산은 그렇지 않다. 섬진강과 남해로 떨어지기 직전까지도 백운산의 맥은 흐트러짐이 없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지리산의 위용에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기운차다. 그 때문인지 한
완주군과 진안군의 경계에 위치한 연석산(928m)은 완주군의 최고봉이다. 한자를 보면 벼루 연硯과 돌 석石자를 쓰는데, 벼루를 만드는 돌이 많이 난다고 해서 주민들은 벼루돌산이라 부르기도 한다.연석산은 기암괴석과 계곡, 조망, 명품소나무 등 볼거리가 많다. 약 2km에 달하는 연동계곡은 자연 그대로의 원시림 같은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산신에게 치성을 드렸다는 산지당 주변과 마당바위, 베틀바위로 이어지는 암반계류는 계곡미의 절정을 보여 준다. 주변 운장산, 구봉산, 운암산 같은 쟁쟁한 명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연석산은 여름철 피
신안 압해도 송공항에서 비금도로 가는 뱃길. 추포도를 지날 즈음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암릉 산이 보인다. 범산(117m)이다. 바다를 지키는 수문장처럼 도열한 암봉들은 진도 동석산의 일부를 옮겨 놓은 것 같다. 바위는 커다란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다가 달려 올 것 같은 기세다. 호랑이 산으로 불리는 추포도 범산은 통바위산이다. 이곳은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했는데, 좋지 않은 접근성과 낮은 높이, 원점회귀를 해도 4km에 불과한 짧은 거리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산속에 들어가면 아기자기한 암릉과 환상적인 조망이 있는 곳이다. 산은
봉황과 용은 상상의 동물이다. 봉황은 하늘의 영물이고 용은 땅의 영물이다. 봉황이 도를 깨치면 온몸이 붉게 물들어 주작이 된다. 황제, 제후 등 귀한 존재를 나타내는 상징물에는 항상 봉황과 용이 있다. 산 지명에 용, 봉황이 들어가는 경우는 종종 있다. 하지만, 주작이 들어간 산은 전라남도 강진 주작산이 유일하다. 높이는 400m급에 불과하지만, 산세는 1,000m 이상 고산 못지않게 압도적이다. 주작산과 나란히 있는 덕룡산은 우리나라 산 중에 험하기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악명이 높다. 조망과 난이도 모두 설악산 공룡능선
1988년 6월, 19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변산반도국립공원은 지질 암석의 교과서다. 중생대의 격렬한 화산활동에서 발생한 화산암류가 차가운 바다를 만나 압축되고 뒤틀려서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다. 변산반도는 크게 외변산과 내변산으로 나뉘며 해안 쪽에 접한 외변산은 기암절벽과 해식애가 도드라지고 채석강, 적벽강, 솔섬, 고사포해수욕장, 격포해수욕장 등 걸출한 명소가 즐비하다. 변산반도의 진풍경은 내변산이다. 내변산은 예로부터 피란처로 좋은 십승지 중 한 곳이다. 굵고 힘차게 뻗은 암릉은 없으나 깊은 계곡과 능선들은 구절양장처럼 불규
화순 백아산은 수직 암봉으로 험준한 천연 요새다. 지리산, 광양 백운산과 함께 과거 빨치산이 은거했던 대표적인 산이다. 이곳은 무등산과 화학산, 회문산, 지리산을 잇는 전략적인 길목이다. 지리산 노고단 남부군 사령부까지 직선거리로 18km, 전북도당이 있는 순창 회문산까지는 22km 거리라 중간기지 역할을 했다. 백아산은 계곡마다 은폐·엄폐 가능한 바위가 많다. 깎아지른 수직 암봉들은 접근조차 쉽지 않지만 산 위에서는 사방으로 경계가 수월한 천혜의 요새다. 마당바위는 피로 쓴 역사의 현장!토벌대와 빨치산의 혈전으로 많은 희생자들이
신안군 비금도는 목포항에서 54km 거리에 있는 유인도 3개와 무인도 79개로 이루어진 섬이다. 우리나라 섬 중 면적 순위로는 19번째로 여의도의 5.5배 크기다. 현재의 모습은 대대적인 간척지 사업으로 만들어졌다. 서쪽 해안은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지역으로 지정될 만큼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해안 남동쪽으로 그림산(226m), 북서쪽으로 선왕산(255m)이 길게 뻗어 있다. 그림산은 단일 화강암 봉으로 이루어진 바위 전시장이다. 선왕산은 노년기 산으로 다양한 암질의 모양이 인상적이다. 죽순처럼 도열한 기암괴석들은 설악산 공룡능선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蝟島는 변산반도 서쪽 끝 격포항에서 여객선으로 50분 거리에 있다. 에 나오는 인당수의 무대이며, 〈홍길동전〉의 율도국이 위도를 모델로 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전라북도에서 가장 큰 섬으로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고, 6개의 유인도와 24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여의도의 다섯 배 크기다.위도를 쫓기듯 등산만 한다면 절반만 본 것이다. 22km 해안 일주도로를 따라가는 ‘고슴도치길’에는 위도관아, 딴정금 육계사주, 치도리 날마통, 정금도, 용머리해안 등 독특하고 맛깔 나는 이야기보따리가 넘